나에게 BL은 이를 테면 나무 방망인 거 같아. 어쩌다 보니 방망이를 수집하고 있어. 방망이 몇 개를 경험해보니 내겐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 맵시 있는 모양(로맨스)과 두들김이라는 기능(포르노). 일단 모양이 아름다워야 눈에 들어오고, 기능이 훌륭해야 흡족해진다.
방망이는 유명한 방망이거리에서 구입하고 있어. 이 거리는 남북로가 먼저 형성됐고 나중에 동서로까지 확장됐는데 역사가 20년 즈음 됐다고 해. 방망이 장인들이 가게 하나씩 열어놓고 그 동안 만든 방망이들을 내놓고 있지. 단층짜리 가게들이 남북동서로를 따라 들어앉은 거리는 그냥 둘러만 봐도 흥미롭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1) 남북로와 동서로가 교차하는 사거리
유명하고 손님도 많은 가게는 아무래도 사거리를 차지한 집들이겠지. 나도 처음엔 사거리로 갔어. 가장 많은 방망이 애호가들이 선택한 가게들이라 그런지 방망이가 꽤 잘 빠졌고 두들겨보니 기능도 괜찮은 거 같았어. 방망이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손님들이 계속 끊이지 않더라.
근데 한 달쯤 써보니 내 방망이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 뭐가 문제였냐 하면 이 방망이들은 마냥 무난하달까. 그럭저럭 잘 빠진 모양새에선 재료 특유의 결을 느끼기 어려웠고 무난한 두들김에선 섬세한 무게중심을 고려한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았어. 방망이 거리로 다시 나갔지.
2) 전통의 남북로
20년 전통이라더니 과연 최강자들의 방망이가 있기는 있더군.
남북로 초입에 있는 K방망이집 장인은 거리의 역사와 함께한 이력, 더럽게 느린 작업 속도로 유명해. 내놓은 방망이가 겨우 두 종류인데 심지어 훨씬 먼저 깎기 시작한 첫 번째 방망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지. 우선 완성된 방망이를 사용해봤는데 왜 이 장인을 최고로 평하는 애호가가 많은지 단번에 이해되더군. 나무에 대한 이해가 탁월해서 방망이 이전에 나무 자체에 매료되게 만들더라고. 나무의 결을 따라 무르고 단단한 느낌이 물 흐르듯 피어나다 종국엔 방망이의 선연한 모양으로 종결되는데, 피부처럼 유연한 방망이의 곡선과 숨처럼 스며드는 방망이의 양감을 내도록 쓰다듬고 만져보고 싶어져. 도무지 질리지 않아.
굳이 아쉬움을 찾자면 기능적인 면이지. 두들김은 방망이의 내적 구조와 내 근육의 협업이거든. 이 남북로에서 내 손에 모자람 없이 꼭 들어맞는 그립감과 섬세한 무게중심을 지닌, 그래서 유장하게 이어질 두들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망이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찾아갔을 때 J방망이집 장인은 출타 중이었어. 스튜디오로 인터뷰하러 갔더라고. 주인 없는 가게에서 방망이 하나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고 말았어. 손바닥에 바로 들어앉는 그립감(섹텐)과 손목의 각도를 자연스럽게 조율하도록 설계된 무게중심(한번 더, 섹텐)을 느끼는 순간, 나는 이 장인이 왜 상대적으로 무거운 나무를 선택했는지 절로 이해하게 됐지. 그저 손잡이를 잡고 방망이를 들어올리는 것만으로 앞으로 이어질 현란한 두들김이 어떻게 시작될지 예고하고 있었어. 꼼꼼하게 깎여 완성된 방망이의 모양은 단단하고 매끄러워 아름다웠고, 팔의 연장인 듯 걸림 없이 연속되는 두들김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더군.
3) 신흥의 동서로
남북로는 거리 정비 전에 잠깐 경험한 적도 있지만 동서로는 진짜 처음이라 최신 방망이 구경의 황홀경으로 홀리 듯 빨려 들었어. 이 가게 저 가게 나들며 마음껏 방망이를 만져봤더니 동서로 특유의 활기를 이해할 수 있었어.
전통의 남북로가 방망이 모양을 실험하고 정착시켰다면 동서로가 주력하는 건 차라리 기능인 듯해 보였어. 두들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방망이 표면을 나선형(시각형 씬)으로 깎기도 하고, 작고 촘촘한 돌기를 셀 수 없이 돋을새김(촉각형 씬)하는 기술이 구현된 방망이도 찾을 수 있었어. 기능의 극대화를 위해서 방망이보다 흉기(뽕빨)에 가깝게 모양이 변형된 디자인도 있더군. 이런 변화는 흥미로웠고 낯선 것이라면 일단 장바구니에 쓸어 담았지. 흉기를 닮았어도 남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애호의 한계를 허무는 장비라면 대환영이지. 온갖 기능 강화 방망이의 홍수 속에서도 안정적인 그립감과 절묘한 무게중심은 두들김을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어.
최근 이 거리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나무 방망이가 아닌 실리콘 방망이의 등장인 것 같아. 바야흐로 실리콘 방망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트렌드는 동서로 외곽부터 사거리 중심으로 이어져 남북로까지 점차 구역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이더라고. 실리콘 방망이(알오물)는 나무방망이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돌파하면서 거침없는 두들김의 가능성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 같았어. 내부에 어떤 장치를 했는지 몰라도 작게 접어 휴대했다가 아무 때나 펼쳐서 작동버튼을 누르면 즉시 최고 출력(러트&히트)의 신명난 두들김을 보여주더군. 심지어 반영구적(출산)이라고 해. 실리콘 방망이는 신기하긴 했는데 쉽게 질리게 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고, ‘나무 방망이 잘 깎는 장인은 실리콘 방망이도 잘 만드는구나’라는 당연한 깨달음도 얻었어. 하지만 역시 내 방망이는 나무방망이더군.
4) 골목에서 찾은 내 방망이
남북로와 동서로를 종횡무진하면서 세상의 방망이가 다채롭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이렇게 나의 방망이 애호는 줄곧 행복할 줄만 알았어. 그런데 방망이 수집은 갈라지고 나뉘어져 어느새 벽癖이 되더군. 선호하는 나무의 종류, 색, 향이 생기더니 심지어 방망이를 살짝 핥아서 기대하고 싶은 맛까지 생겨버렸어. 빼도박도 못하는 희귀 방망이 애호벽(마이너)이지. 이제 골목으로 들어가야 해.
손잡이는 구멍 없이 통으로 깎은 것(공시점)이 좋고, 나무는 치밀하고 좀 묵직한 게(미남수) 좋아. 반드시 벼락맞은 나무로만 깎은 방망이(리버스)나 깊이 있는 산미가 느껴지는 방망이(가난공)를 가끔 만나면 너무 반가워. 은은하고 부드러운 훈연 향이 나는 방망이(중년수) 애호가 별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 9년 동안 밖에 널어 말린 나무로 깎은 방망이(일공다수)는 이제 장인의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봐야 하는 걸까. 이해는 해. 팔려야 만들지. 그래도 아직 대로에서 좀 들어간 골목에서 운 좋게 이런 숨은 방망이들을 만날 때가 있어.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가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다 이쪽 방망이 애호가를 만나기도 하지. 혹여 허탕을 치게 되면 문 닫힌 가게 옆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어느 골목에서 이런 방망이를 봤다고, 옹기종기 정보를 나누기도 해. 굳이 이런 방망이를 애호하는 서로에 대한 인사랄까.
5) 도깨비 방망이는 골목에서도 한참 더
여기 방망이 생각을 하다가 잡담이 시작된 거야. 오랫동안 닫혀 있던 이 가게에 장인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오래된 방망이라도 기다리니 나오긴 하더군. 방망이의 맵찬 스타일을 보면 '당신이 어떤 방망이를 기대하든 어쨌든 나는 내 방망이를 깎아놓았다'는 장인의 태도를 느낄 수 있어. 마치 애호가들의 사나운 기대를 깨부수는 장군 방망이처럼 보이지만, 내 방망이로 네 뚝배기를 깨고 말겠다는 호기가 아니야. 나는 어찌 해도 이렇게 깎을 수밖에 없었다는 작업의 벽癖이 느껴져서 차라리 좀 애틋하기도 하다. 이왕 재능으로 깎는 방망이라면 도깨비 방망이를 깎으시지.
사방으로 편벽한 방망이에선 금도 은도 나오지 않고, 하물며 이 방망이가 장인에게 금은보옥을 가져다 주지도 못했겠지만, 내겐 꽤 들을 만한 노래가 나와. 모양(로맨스)이란 무엇인가, 기능(포르노)이란 무엇인가, 방망이(BL)란 무엇인가, 도구(취향의 읽기)란 무엇인가. 누가 뭐래도 여전히 그 노래는 희귀 방망이 애호가라면 누려 마땅한 존나 매력적인 노래라고.
이 장인의 방망이들은 거의 금동대향로 뚜껑을 닮았어. 내겐 방망이의 극락을 보여주지. 먼지 앉은 나머지 방망이도 마저 닦아 내놓으시길. 부디 어디선가 취향의 방망이를 여전히 깎고 계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