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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로냐프 강 1부 _이상균

category friday 2019. 9. 23. 22:16

 

 

 

로설 커뮤니티에서 '초창기로판'으로 추천하길래 읽음:

 

로판은 동로판만 죠금 읽었을 뿐, 서로판은 선뜻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중세 기사의 드라마틱한 맹세 장면 덕분에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됐어. 일부러 초판을 구했는데, 책을 받자마자 책날개의 곱디고운 작가 프로필 사진과 출판년도를 확인하곤 나도 모르게 하하 웃었다. 아, 이거슨 먼 옛날 이 땅의 공대 형들이 장르문학 동호회의 개척자가 되어 키보드를 말 삼고 푸른 화면을 평원 삼아 달리기 시작했다던 바로 그 전설의 시대 작품이로구나. 어쨌거나 25년 전 풋풋하고 진지했던 아마추어 소년 작가가 꿈꾸는 비장미로 가득한 서양중세 판타지를 경험했다. 작품 줄거리나 세계관에 따른 용어, 인상적인 장면은 추천글이 워낙 좋으니까 여기엔 간단한 후기만 남겨볼게.

 

이 작품이 과연 로맨스소설일까? 아니라고 생각해. 이 작품은 귀족 출신 기사 퀴트린이 신분의 차이를 넘어 천민 음유시인 아아젠에게 카발리에로의 맹세를 하고 그녀가 꿈꾸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생을 바치게 되는 이야기지만,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소재는 이나바뉴, 로젠다로, 크실 3국의 기사들과 그들이 벌이는 전투 이야기야. 어느 기사든 저마다 사연이 있고 전투에서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사적이고 공적인 사명이 있어. 그들은 전장으로 나아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승전을 위한 최선의 전술을 구사해. 중요 전투들은 자세한 묘사에 더해 전술을 요약한 그림까지 실려있어서 작가가 특별히 고심해서 쓴 노력이 뚜렷이 보인다. 전투에 참여한 기사들의 사연도 세심하게 외전으로 붙여놨는데 그들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투를 맞이하는 운명적 필연을 느끼게 만들어. 전투마다 응원하게 되는 '내 기사'가 생기고 독자로서 '내 조국'이 여러 번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지. 이 작품을 즐긴다는 건 기사 개개인의 사연과 더불어 필경 어느 전투 속 종국에 이른 그들의 전 생애에 대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6년 간의 연재 기간 동안 청년이 된 작가의 성장하는 필력을 느끼는 건 덤이고.

이 작품에서 로맨스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 그럼에도 로맨스야말로 이 작품의 처음이고 끝이야. 퀴트린의 카발리에로 맹세 장면의 숭고미(=나이트 레이피엘의 거의 모든 것)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조국과 지위를 버리고 타국에서 필부의 삶을 선택한 것, 다시 로젠다로의 기사가 되어 아아젠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은 모두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거든. 아아젠이 꿈꾸는 평등한 세상을 끝내 지켜낼 수 없었지만, 오히려 비극의 절정 직전에 멈춘 결말은 이 로맨스를 유일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지. 기사로서 지켜야할 가치와 명예, 신념과 이상의 근거가 국가나 이념이 아니라 사랑이라니, 이 몹쓸 중세판타지는 어찌 보면 사랑에 관해 지나치게 순수하기까지 하다. 지켜주고 싶은 단 하나 사랑 앞에 나라와 가문이 다 무슨 소용인지, 이거 로맨스 마따.

사라진 건 건 퀴트린과 아아젠 사이의 감정을 보여주는 섬세한 묘사야. 여기서 좀 울게. 아슈벨의 늪에서, 케론샤 언덕에서, 제르세즈 외딴집에서 고요하게 감겨드는 사랑의 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ㅠㅠ  그 뜻밖의 놀라움, 머뭇대는 주저함, 노래처럼 마음을 울리는 사랑의 느낌을 납작하게 만드는 공대 형 문체의 지나친 담백함이여ㅠㅠ 퀴트린을 연애고자로 만들고 아아젠을 텔레파시 독백으로 입다물게 만드는 공대 형의 미숙한 낯가림이여ㅠㅠ 작품을 뒤덮는 낭만적 비장미에 가려진 삶과 사랑의 올록볼록한 시간들이여ㅠㅠ 그냥 포옹만 해도 얼마나 좋은 일이냐. 동네 사람들아, 퀴트린이 아아젠을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는다오오 엉엉엉ㅠㅠ

 

훌쩍, 대신에 얻게된 것도 있어. 퀴트린과 다른 기사들의 관계는 전형적이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었어, 훌쩍.

#퀴트린-라벨

라벨은 워낙 어린 나이에 기사가 됐기 때문에 형처럼 친한 퀴트린의 신중한 태도와 탁월한 실력을 동경하면서 자애로운 인품을 지닌 그의 곁에 늘 있고 싶어 하지. 라벨에게 퀴트린은 오랫동안 귀감이고 우상이었어. 옐리어스 기사단에서 영구제명된 퀴트린이 로젠다로의 나이트 네라이젤이 됐을 때 이런 관계는 완전히 바뀌고 말아. 가이사로를 잃은 라벨은 퀴트린을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베어버리겠다고 맹세해. 이제 그와 견주어도 백중세일 만큼 성장한 실력을 갖게된 라벨은 마침내 전장에서 만난 퀴트린에게 묻지. "세상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었나요?" 서로 검을 겨누고 있어도 여전히 라벨이 이런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질문에 자신의 생을 걸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 퀴트린뿐이야. 그래, 저런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역사의 후대가 되는 세상은 꽤 멋진 거 같아. 끝까지 살아남아 훗날 이름 없는 기사와 음유시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이 라벨이라는 건 작지 않은 위로가 되었어.

#퀴트린-라시드

퀴트린의 유일한 제자는 라벨이 아니라 라시드야. 산 속의 일자무식 나무꾼이었던 라시드를 로젠다로 바스크 129 나이트로 키워내. 원래 스승-제자 관계를 좋아하긴 하는데 라시드의 부모 이야기를 외전으로 접하고 이들의 관계가 더 깊이 마음에 닿았어. 이나바뉴 역사상 영구제명된 기사는 퀴트린과 그보다 한 세대 전인 쥬벨린 두 사람뿐이야. 쥬벨린은 타향 로젠다로 산골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기사로 키우지 않았고, 퀴트린은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쥬벨린의 아들을 기사로서 세상에 내보내. 사랑을 위해 신분과 조국을 버렸던 두 명의 기사는 라시드를 통해 이렇게 이어지게 되는 거야. 퀴트린이 라시드의 전사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증거는 라시드였는지도 모르겠다.

#퀴트린-엘빈

섀럿 가문의 주인이자 1부 최후의 옐리어스 기사단장은 퀴트린의 아버지 엘빈 섀럿이야. 바스엘드로서 퀴트린의 냉철한 판단력과 이나바뉴 제1기사라는 하야덴 실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어. 그리고 한때 아버지의 긍지와 자부심이었던 아들은 최후의 전장에서 적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돼.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 얘기는 전형적이긴 한데 여기서 좀 특이한 점은 이들 관계에서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이 아버지라는 거야. 엘빈은 기사로서나 아버지로서나 냉엄하고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인데 최후의 결전을 앞둔 모습에서도 회한보다는 비장미가 흘러. "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너 역시 아버지보다는 기사인 나를 원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중략) 이 아버지와 함께 가자꾸나. 내가 너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그나저나 작가 포함 아들들은 왤케 아버지 죽이는 거 좋아하는 거야)

#퀴트린-파스크란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애정했던 기사는 퀴트린이 아니라 크실 최고의 기사대장, 나이트 파스크란이었어. 자수성가하느라 실력지상주의자에 어딘가 일그러진 인성을 지닌 캐는 내게 올타임넘버원이거든. 이런 캐는 역사물에서 절대 주인공이 되는 법은 없지만 언제나 입체적인 성격 변화와 잊지 못할 인상적인 퇴장을 하는 법이지. 파스크란의 삶을 관통하는 제1원칙은 기사의 세상에 홀로 우뚝 선 최강자가 되는 것이야. 그가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이 이런 가치관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이 야망 앞에선 조국도 없고 사명도 없어. 명예는 얼어죽을, 무조건 달리고 들이박아서 승부를 가르고 끝장을 봐야 하는 거야. 대개 이런 놈들이 갑툭튀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판이 뒤흔들려 버리지. 기사 퀴트린의 맹세 장면에 뜻밖의 입회인이 되더니만 아무 명분없이 로젠다로 평원 여기저기에 등장해서 대활약을 해. 강하기만 할 뿐 심장이 없던 그가 퀴트린의 삶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이 나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걸 발견하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야." 검은 갑옷이라는 아버지의 이름과 나이트 파스크란이라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최후의 결전을 치르러 나가는 파스크란 덕분에 이 이야기의 끝이 지극한 슬픔에 멈추지 않았던 것 같아.  

 

마지막으로 다레이네를 얘기하고 싶어. 

각 장을 여는 역사학자 베이로도의 [십이 기사 평전]에 퀴트린, 나이트 레이피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어. 이나바뉴와 로젠다로 양국의 기사로서 3, 4차 천신전쟁의 주요 전투마다 최고 역량을 발휘했던 퀴트린이 깨끗이 지워진 역사란 무엇일까. 아마 승자의 역사로서 기록으로 남는 정사는 결코 그 시대를 실제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겠지. 작가는 역사에 누락된 사람들의 삶, 퀴트린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거겠고. 그렇다면 다레이네의 이야기는 어떨까. 이 작품에서 주요 조연조차 못되는 다레이네는 라시드의 어머니야. 연인 쥬벨린과 함께하기 위해 보장된 기득권을 버리고 제르세즈 산기슭에서 가장 단순한 삶을 일구어낸 그녀. 그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남편의 때 이른 죽음으로 끝나버렸지만 다레이네는 그후로도 라시드를 성실한 청년으로 길러내면서 소소한 저녁의 기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매일을 살아가. 소중하긴 하지만 시시할 수도 있지. 하지만 거듭되는 기사들의 비장한 죽음과 그들의 뒤를  따르는 레이디들의 고결한 자결보다 예상하지 못한 다레이네의 별볼일없는 죽음이 끝내 더 깊게 마음에 남았어.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시 이 벅차오르는 여운 때문에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아.

 

추천글에서 결말까지 읽어버렸더니 마지막 5권 읽는 데 3일 걸렸고 최종장 '하얀 로냐프 강'은 네 번에 나누어 읽게 되더라. 아, 이건 도저히. 아아젠, 퀴트린, 파스크란을 비극적으로 떠나보낼 각오가 좀처럼 서야 말이지.

위 지도를 추천글 써준 이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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